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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는 넘겼지만, 의식이 없습니다.” 10년 전, 어느 날. 동아리실에서 만나자던 그 약속이 무색하게, 태성은 학교 옥상에서 떨어진 채 발견됐다. 오랜 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네 명의 소꿉친구는 생각에 잠겼다. 그 어떤 고민도, 불만도, 우울도 없던 태성이. 든든한 태양같던 태성이 불현듯 자살했을 리는 없다. 그럼, 타살이란 말인가? 의심은 날이 되어 서로를 찔렀고, 끝나지 않는 싸움에 네 사람은 점점 떨어졌다. 식물인간이 되어 영원토록 눈을 감아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삶을 살게 된 태성이 옆에는 나은밖에 남지 않았다. “한태성이 깨어났다고?!” 그로부터 10년 뒤,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그들이, 한 통의 연락을 받고 다시금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기적적으로 눈을 뜬 태성에게 몇 번이고 10년 전 일을 물어봤지만,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나은은 괜찮았다. 상관 없었다. 그저 지금이 행복했다. 왜냐하면... ‘그’가 태성을 죽이기 위해 찾아왔다는 것을 몰랐으니까. 태성을 돌보던 나은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라진 태성은 비상계단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됐다.

수조 속에 영원히 잠들어버린 도련님. 그를 사랑한 4명의 남자들을 둘러싼 이야기. 집사장, 하인, 정원사, 가정교사 — 도련님의 곁에 남은 이는 네 명의 사용인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비밀을 숨긴 채 이 저택에 머물렀다.

먼 옛날, 하늘의 신이 세상에 처음 내려와 생겼다는 신천군. 인구는 2만명 정도로 작지만, 풍요로운 농작물과 마을을 지탱하는 섬유공방 덕분에 부족함이 없는 마치 신의 가호를 받은 듯한 마을. 그곳에서 태어난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냈었다. 우리의 인연이 새로운 방향으로 밀려 들어온 1998년 그 무렵. 그 때 우리의 추억, 사랑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 새로운 천년을 눈 앞에 두고 우리는 어떤 미래에 함께 물들어 갔을까.

용의 가호로 번영을 이룬 페른 제국. 국경 밖은 괴물이 들끓지만, 제국의 영토는 안온했다. 제국을 수호하는 건 용이 내린 네 가지의 성물. 이를 관리하는 것이 바로 선택받은 무녀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의 그늘에서, 제국의 붕괴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갑자기 힘을 잃은 수호룡의 성물, 괴물이 국경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혼란. 위험에 빠진 제국을 구하기 위해, 황제는 용의 무녀에게 어떤 의식의 시작을 명했다. 하지만 황궁에서 의식이 거행되는 그 날. 용의 무녀, 아스토리아 페일런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용의자는 네 명. 의식에 참여하도록 황명을 받아 집결한 사내들이었다. 차갑고 푸르른 눈을 지닌 제국 북부의 대공. 재상을 배출한 남부 명문가 태생의 젊은 제독. 수단을 가리지 않고 부를 이룬 서부의 상단주. 용의 무녀에게 절대복종하던 동부 출신의 성기사. 공교롭게도, 네 미남자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권력자였고. 전원이 아스토리아를 깊이 흠모하고 있었다. 애증과 어둠이 소용돌이치는 황성의 어둠. 별빛처럼 빛나는 진실을 손에 쥐는 건 과연 누구일까.

인간은 흡혈귀에게 피를 빨리면 흡혈귀가 된다. 하지만 흡혈귀는 사랑하는 인간에게 입맞춤을 하면 인간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그런 세계에서 자아낸, 작은 이야기. 이곳은 왕의 거처인 오래된 성이자, 「흡혈귀와 인간을 구별하지 않는」 웨딩홀. 오늘 이곳에서는 흡혈귀의 왕과 인간의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결혼식장을 가득 채운 기대 속에서 양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드문드문 박수가 퍼졌고, 꽃잎처럼 번진 박수는 그대로 조용히 잦아들었다. 붉은 카펫 위를 걸어오는 것은―― 불길한 미소를 띤 흡혈귀의 왕과, 그녀에게 손을 이끌린 목 없는 신부였다. 흡혈귀의 왕은 오만한 걸음으로 신부를 의자에 에스코트하고, 불길한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안에 내 신부의 목을 베어낸 무도한 자가 있다」 흡혈귀의 왕의 시선이 다른 하객들의 얼굴을 훑었다. 전율. 뱀이 등줄기를 기어오르는 듯한 감각. 공포에 소름이 돋은 채, 하객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이야기의 주객은 바뀐다. 스포트라이트는 신부들에게서 객석으로 향한다. 사건의 막이 오른다.